[현장 노트] 🤷‍♂️ 제품력으로 승부, 장점만 강조하면 팔린다고?

🔥 두 달의 기적으로 본 진짜 시장 전략

"저희 제품 한 번 써보시겠어요?"
"지금 쓰는 거 별 문제없는데요."

이 대화, 얼마나 많이 들어보셨나요? 저는 정말 지겹도록 들었어요.

회의실에서는 분명히 완벽했거든요. "우리 제품은 경쟁사 대비 지혈 속도가 20% 빠르고, 사용법도 더 간단하고, 안전성도 입증됐고..." PPT 슬라이드마다 빼곡히 적힌 장점들. 팀장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정도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네"라고 하셨죠.

그런데 막상 병원에 가면 반응이 시큰둥하죠

"또 새로운 제품이군요. 근데 지금 쓰는 것도 잘 되는데 왜 바꿔야 하죠?"

그때마다 가슴이 답답했어요.

'이렇게 좋은 제품인데 왜 관심이 없지?'
'내가 설명을 잘못한 건가?'
'더 강력한 장점을 찾아야 하나?'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제품 장점은 분명한데 고객 반응은 미지근하고, 회사에서는 "더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를 찾아봐"라고 하고... 그럴 때의 그 막막함 말이에요.

저도 한동안 그 늪에서 헤맸어요. '우리 제품만의 특별한 USP를 찾아내면 분명 매출이 쑥쑥 올라갈 거야!'라고 믿으면서요. (USP: unique selling point)

그런데 어느 날 한 선생님이 던진 질문 하나가 모든 걸 바꿔놨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뭐가 좋은데요?"

고객은 제품이 '훌륭'해서 쓰는 게 아니였어요.
자신에게 '필요'해서 쓰는 거더라고요.

오늘은 제가 직접 겪었던 혈관지혈기구 시장의 극적인 반전 이야기를 통해,
왜 제품이 아닌 '고객'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볼게요.

📖 철옹성을 뚫은 두 달의 기적

병원에서 혈관 시술을 하고 나면 지혈을 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손으로 30분에서 1시간씩 꾹 눌러서 지혈했어요.

특히 동맥은 혈압이 높아서 더 오래 눌러야 하고, 환자는 하루 종일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죠.

그런데 90년대 후반 지혈기구가 나오면서 이 모든 게 바뀌었어요.

지혈기구를 사용하면 바로 지혈 완료!
환자도 몇 시간이 지나면 걸어다닐 수 있게 됐죠.
의료진 노동력도 줄이고 환자도 훨씬 편해졌어요. 그래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장이에요.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Step 1: 뚫을 수 없어 보였던 벽

혈관지혈기구 시장은 정말 철옹성이었어요. 마치 콜라와 펩시처럼 이미 두 개의 강력한 제품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새로운 제품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어 보였죠.

"또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고요? 지금 쓰는 것도 잘 되는데 왜 바꿔야 하죠?"

병원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항상 이랬어요. 차갑고 무관심했죠. 기존 제품들도 충분히 효과적이었으니까요.

그런 시장에 우리가 새 제품으로 뛰어든 거였죠. 이미 두 제품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상황에서요.

Step 2: 차별점을 찾다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하다가 우리만의 포인트를 찾았어요.
기존 제품들은 지혈은 잘 되는데, 몸에 남아있더라고요. 물론 이물반응은 없지만 그래도 이물질은 이물질이잖아요.

"저희 제품은 두달 후 가수분해돼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런 걱정 하실 필요 없어요. 물론 지혈도 잘 되고요."

이 메시지로 시작했어요.
이미 잘 쓰고 계신 선생님들은 큰 반응이 없었지만, 이벤트를 경험해보신 분들은 달랐어요. "내가 치료는 잘했는데 엉뚱한 걸로 환자가 문제생기면 곤란하지..." 하면서 우리 제품을 써보기 시작한 거죠.

소수였지만 확실한 니치 마켓을 잡았어요. 우리 제품이 꼭 필요한 팬층부터 조금씩 늘려나갔죠.

Step 3: 예상치 못한 게임 체인저

그런데 정말 운명적인 일이 일어났어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 중증 보장성 강화"가 시작되었죠. 암, 심장, 뇌, 난치성 질환이 4대 중증이었는데, 우리 제품이 심장 질환 관련 제품으로 포함된 거였어요.

어느 날 심평원에서 연락이 받았어요. "이 제품은 급여화 대상입니다"

다른 혈관지혈기구 회사들은 급여화를 최대한 미루려고 '독립적 검토'(정부 정책에 대한 재검토 신청)를 신청했어요. 급여화되어 가격이 떨어지면, 더 많이 팔아야 매출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게 만만하지 않아요. 때문에 비급여 기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게 매출로는 유리할 수 있어요.

우리 역시 계산을 해봤죠. 근데 원체 수요가 많지 않던 터라 더 판매해야 하는 수량도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결국 고민 끝에 독립적 검토 신청을 하지 않고 급여를 일찍 받기로 했습니다.

Step 4: 놀라운 반응의 변화

그랬더니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전혀 관심 없다고 했던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급여가 적용된다고요? 한 번 써볼까요."

이전까지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분들이에요. 한 번 써보신 선생님들은 "어? 생각보다 쉽네요. 지혈도 잘 되고..."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Step 5: 급여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유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환자 부담이 줄어들어서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현장에서 더 깊이 들여다보니, 급여 적용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더라고요. 바로 동의서 업무의 해결이었어요.

비급여 치료재료를 쓸 때마다 병원에서는 꼭 환자 동의서를 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환자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할 때 병원이 비용을 청구할 수 없거든요. 고스란히 병원 손실이 되죠.

그럼 누가 이 동의서를 받을까요? 수술하는 교수님이? 아니에요. 보통은 간호사나 전공의에요. 환자 한 명 한 명마다 매번 받아야 하니까 얼마나 번거로워요!

원래 혈관 지혈 기구 자체가 의료진 노동력을 줄이려고 만든 제품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 제품 쓰시면 비급여 동의서 받는 업무도 없어집니다"라는 메시지가 의료진들 귀에 번쩍 들어온 거죠.

"급여 적용이라고요? 그럼 동의서도 안 받아도 되고? 한 번 써볼까요."

이게 숨은 찐 이유였어요.

딱 2개월 먼저 급여를 받았는데, 완벽한 모멘텀이 되었죠. 기존에 전혀 관심 없던 선생님들도 써보기 시작하신 거예요. 써보니까 "어? 생각보다 쉽네. 지혈도 잘 되고."

그렇게 두 달 동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지금은 시장의 주요 제품 중 하나가 되었어요.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죠.

💡 성패를 가른 건 USP가 아니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게 있어요. 우리가 성공한 이유는 단지 제품의 기술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USP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3가지 이유 :

• 제품 중심 사고는 고객 니즈를 놓치게 해요 - 우리는 지혈 효과나 사용 편의성만 강조했지만, 정작 고객은 업무 효율성을 원했거든요. (지혈 성능·사용 편의성은 기본 충족 요건, 즉 시장 진입 조건에 가까웠던 거예요)
• 매력적인 특장점 ≠ 매출 보장 -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도 고객의 현실적 필요와 맞지 않으면 외면받아요
• 고객 스스로도 모르는 필요를 찾는 게 진짜 차별화 - 동의서 업무 부담은 의료진들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pain point였어요

제품의 특장점은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특장점이 있어야만 매출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결국 제품에 대한 이해 + 시장에 대한 이해로 어떻게 스토리텔링할 것인가가 뒷받침되어야 매출을 만들 수 있어요.

🛠️ 고객의 필요부터 파악하는 실전 적용법

그럼 우리는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하나씩 찬찬히 짚어볼게요.

1. 제품 브로셔 만들기 전에 고객 인터뷰부터

"우리 제품의 장점이 뭐지?"가 아니라 "고객이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지?"부터 시작해보세요.

실제로 병원에 가서 물어보세요 :

• "현재 사용하시는 제품에서 가장 불편한 점이 뭔가요?"
• "하루 중 가장 번거롭다고 느끼는 업무가 있다면요?"

2. "왜 기존 제품을 쓰시나요?" 질문의 힘

이 질문 하나로 고객의 진짜 구매 기준을 알 수 있어요.

• "효과가 좋아서" → 임상적 효과 중시
• "익숙해서" → 변화에 대한 거부감
• "문제없이 써왔으니까" → 안정성 추구

3. 겉으로 드러난 니즈 vs 숨겨진 니즈 구분법

고객이 말하는 니즈와 진짜 니즈는 다를 수 있어요.

• 겉으로 드러난 니즈: "효과적인 지혈"
• 숨겨진 니즈: "동의서 업무 부담 해결"

현장에서 관찰하고, 업무 플로우를 따라가보면 숨겨진 니즈를 발견할 수 있어요.

4. 업무 효율성이라는 숨겨진 구매 동기 활용법

의료 현장에서 "시간 절약", "업무 간소화"는 정말 강력한 메시지예요.

• "이 제품을 쓰면 ○○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요"
• "기존 대비 ○○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 "추가 서류 작업 부담이 줄어듭니다"
  

🎯 제품이 아닌 고객에서 시작하기

결국 성공한 제품들은 고객의 필요를 정확히 찾아내거나, 때로는 고객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필요를 발견해서 제공하는 제품이에요.

혈관지혈기구 사례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생각한 USP(지혈 효과)와 고객의 진짜 필요(업무 효율성)는 달랐어요.

고객의 필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시장의 문이 열렸죠.

오해하지 마세요.

제품의 특장점은 여전히 중요해요. 다만 그 특장점이 고객의 현실적 필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찾아내는 게 먼저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던져볼게요.

"우리는 제품에서 시작하고 있을까요, 고객에서 시작하고 있을까요?"

다음번에 제품 소개서를 만들 때, 첫 줄에 제품 사양을 적기보다는 "고객이 겪고 있는 문제"부터 적어보면 어떨까요? 분명 다른 관점에서 우리 제품을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