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먼저 찾는 영업사원 되기 😎
#1 의사도 배우는 의료기기 사용법 🔬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의료기기를 판매하고 있나요?
제가 처음 담당한 제품은 '시술'에 사용하는 치료용 의료기기였어요. 아시다시피 시술은 수술보다 덜 외과적인 치료에요.
치료에 필요한 최소한의 피부를 절개하는 시술은 수술에 비해 시간이 짧게 걸리고 환자의 회복이 빠른 장점이 있어요.
때문에내과계에서는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고 외과 선생님들도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점차 늘어갔어요.
회사에서는 제품 사용법뿐 아니라 시술에 필요한 전반적인 술기(의학적 기술)를 함께 교육하는 부서가 있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새로운 치료 방법을 익히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죠.
이러한 배경 덕에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을 직접 만나는 영업사원 역시 제품뿐 아니라 시술 전반을 이해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했는데요.
시술을 처음 익힌 선생님은 수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환자를 치료할 때 얼마간은 제품과 시술법에 익숙한 영업사원이 참관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환자의 상황에 따라 어떤 제품을 선택하고 시술을 어떻게 설계할지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아무래도 도움되었어요.
영업사원들은 여러 병원을 담당하며 다양한 케이스를 참관한 경험이 있기에 시술을 잘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전해주는 역할도 했어요.
#2 의료기기 영업사원은 어떻게 교육을 받을까? ✏️
회사는 단순히 제품을 아는 것뿐 아니라 의사 선생님과 시술에 대한 의견도 나눌 수 있는 영업사원을 지향했기에 입사 후 꽤나 타이트한 교육을 받았어요.
입사 첫날, 마주한 마케팅팀 과장님은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하는 미소와 함께 전공서적처럼 두꺼운 책 한 권을 저에게 내밀며 말했죠.
“이게 1권이야. 빨리 끝내고 2권도 얼른 보자고.”
몇 주 동안 회사에서 교육을 받으며 제품과 시술법, 우리가 속한 산업을 배워 갔어요. 그다음부터는 같은 팀 선배들을 차례로 따라다니며 병원에서 시술을 참관했죠.
입사 후 첫 한 달이 지나자 팀장님은,
“이제 교육 한번 제대로 받고 와야지. 본사 가서 공부 좀 하고 와.” 라고 하시더군요.
같은 팀 몇 명과 함께 교육을 받으러 갔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죠.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받았어요.
트레이너는 미국 사람이었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용어도 익숙지 않고 영어를 쓰는 게 편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수업을 따라가려 애를 썼죠..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잠깐 쉬었다가 선배의 방에 다 같이 모여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사람들 얼굴에서 표정이 점차 사라졌어요..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사원의 패기가 가득했지만 교육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점수 잘 받기를 떠나 일정 자체를 소화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
한편으론 몰랐던 내용을 배우는 게 즐거웠어요. 특히 시술은 저에게는 신세계였어요.
'수술 만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병든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허벅지에 작은 구멍을 뚫고 혈관 안으로 얇고 긴 관을 넣어서 사람을 치료하기도 하는구나.’ 💡
새로운 기술이라고 했지만 이미 1920년대부터 시도되고 있던 치료법이었어요. 방법과 도구가 조금씩 발전되어 오늘날에 이르러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었어요.
제가 담당하는 제품은 바로 그런 새로운 술기(의학적 기술)에 쓰였어요.
#3 '어? 들린다, 들려!' 의료기기 영업하는 법 👩🚀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선배들과 동행방문(함께 다니며 실제 직무 수행하는 모습을 배움) 갔을 때였어요.
시술 참관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안 들리던 말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하는 거에요.👂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의사 선생님과 선배가 당최 무슨 소리를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임팬딩 오클루젼(impending occlusion)인 것 같아.”
“네, 교수님. 조금 보수적으로 보시는 거죠?”
“응, 한 사이즈 작게 써야 할 것 같아.”
혈관이 곧 완전히 막힐 것으로 보이기에 무리하면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어요. 때문에 원래 제품 선택 가이드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를 쓰겠다는 의미였죠.
힘들었지만 날개를 달아준 교육 덕분에 저는 병원에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조금씩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자 점차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죠.
그날 본 것들을 잊기 전에 어딘가에 적어두고 싶었어요. 노트를 펴고 그날 보았던 시술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
어떤 시술을 했고 환자 나이와 성별, 기저질환이 있었는지 여부. 시술 순서와 그때 사용한 제품들을 적었어요. 어떤 제품을 써서 치료 부위에 접근했고 왜 그 제품을 선택했는지도 생각나는 대로 메모했죠.
이러한 신체 구조일 때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제품들 중 어떤 제품이 나은지, 환자가 이런 병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같은 시술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제품 선택을 하는 게 좋은지.
어느 덧 우리 제품 뿐 아니라 시술 전반을 기록하는 증례집이 되어 있었어요.
시술 공책에 케이스가 조금씩 쌓여가면서 제 생각도 정리되고 시술을 보는 눈이 점차 길러졌어요. 베테랑 교수님의 시술을 보면 왜 저런 테크닉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 왔어요.
그러면서 저를 찾는 병원이 하나씩 생겼어요.
의사 선생님은 시술을 배웠고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지만 시술을 참관하면서 제품 사이즈를 확인해주거나 다른 병원의 사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어요.
시술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매출은 자연히 따라왔지요.
"다음 주 우리 병원에 와 줄 수 있나요?"
"네, 다음 시술에도 오겠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뛰어 다니며 하루에 몇 케이스씩 참관을 가는 날도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런 추억 덕분에 저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시절을 가끔 떠올립니다.